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피의 부르짖음(창세기 4장 1∼11절)

구원의 계획 2018. 6. 20. 00:28

피의 부르짖음(창세기 4111) 2018.6.20

 

인간은 흙으로 빚어져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말로 하면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생존 조건 가운데 땅은 매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고 땅의 소산물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식주 모든 것은 땅에 기반을 둡니다.

 

성경은 땅을 마치 생물체처럼 취급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은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고 말씀하시며 땅을 인격체처럼 취급합니다.

 

본문에서 가인은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을 때 그를 들에서 쳐 죽입니다. 완전범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취급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도 땅에서부터 아무도 모르게 죽은 아벨의 피가 호소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는 아벨의 피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910)

 

아벨 이후 이 땅에 억울하게 뿌려진 피들은 계속해서 이 땅에서 들리지 않는 외침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피들이 가득해지면 땅은 죄를 담게 되고 죄인을 토해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18:25, 28)

 

우리의 땅에 이런 억울한 자의 피가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엄마 배 속에서부터 낙태로 흘려지는 아벨의 피들이 1년에 30만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으면서 흘리는 아벨의 피가 가득 차면 이 땅은 결국 거민을 토해내게 됩니다. 죄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는 분노와 원망,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 땅에서 부르짖는 아벨의 핏소리가 가득 차면 그 분노와 증오는 또 다른 아벨의 피를 부르게 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2000여년 전 골고다 언덕 위에 한 남자가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뉘어졌습니다. 남자의 손은 밧줄에 묶였고 곧이어 그 손과 발목에 못이 박히자 피가 땅에 흘러내렸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땅은 이런 피를 대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피는 모든 분노를 잠재우고 원망과 증오를 삭히는 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이 피를 히브리서 1224절에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라고 묘사합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로가 죽이는 날이었고 아벨의 피가 이 땅에 뿌려졌습니다. 남북 전역에서 아벨의 피는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또 간접 참가국을 포함한 21개국의 유엔 연합군이 와 이들의 피도 뿌려졌으며 북한을 도운 중공군과 소련군의 피도 이 땅 전역에 뿌려졌습니다. 지난 세기 아벨의 피는 하늘과 서로를 향해 부르짖으며 원수 갚기를 충동해 왔습니다.

 

이 피의 부르짖음은 오직 예수님만이 책임지고 해결함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케 합니다. 또 용서받은 인간들을 서로 화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아벨이 아닌 예수의 피를 뿌려 한반도에서 용서와 화해를 만드는 복음의 능력을 전해야 합니다.

 

하광민 생명나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