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직면하라(출애굽기 8장 20∼32절) 2018.6.23
한국말에 ‘삼세판’이 있습니다. 뭐든 적어도 세 번은 해야 제 실력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와 신하들, 애굽 사람들은 세 번에 걸쳐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을 겪었습니다. 그야말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재앙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는 여전히 완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요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나일강에 나가 신하들과 함께 그가 섬기는 신께 종교적인 의식을 행했습니다. 재앙을 계속 경험했어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 앞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바로를 두려워하지 말고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하신 겁니다. 완강하게 버티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더 강력한 재앙을 통해 그를 깨뜨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10가지 재앙 중 ‘파리 재앙’은 공중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 창조의 능력이 물과 땅을 넘어 이제 하늘에까지 미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파리 떼가 공중에서 몰려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파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집파리와 다릅니다. 그것은 ‘소를 죽이는 파리’란 뜻을 가진 ‘체체파리(tsetse fly)’입니다. 이 파리는 동물과 사람을 물어뜯어 피를 빨아먹으며 사람과 짐승에게 수면병을 전염시키는 무서운 해충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살고 있던 ‘고센 땅’에는 파리 떼가 엄습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파리 재앙에 더해 심리전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재앙과 고통을 당할 때는 그래도 견딜 만했는데 히브리 노예들은 고통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구별하다’는 단어는 원래 ‘구속하다’란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구별을 넘어 영적인 구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홍수를 일으키실 때 노아의 가족 8명은 방주를 지어 들어가게 하심으로 그들을 구별하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파리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해 보호하심으로써 그들을 능력의 손으로 보호하시고 지키는 것을 애굽인들이 알게 하셨습니다.
파리 재앙이 실제로 임하자 고통을 견디지 못한 바로는 모세를 불러 그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바로가 허락한 것은 전적인 허락이 아니라 부분적인 허락이었습니다. 애굽을 떠나지 않고 애굽 안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그들을 붙잡아두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부분적인 허락을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성도들을 향해 빛과 어둠의 세계를 나누고 한 발은 이 땅에, 한 발은 저 땅에 디디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처세술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오가는 이중적 삶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세상과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교회도 적당히 믿어야지 너무 빠지면 안 돼”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신앙은 ‘영적 바로’와 직면할 때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도전이 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강력한 능력으로 악한 세상에서 택한 백성들을 지키고 돌보시며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수시로 다가오는 세상의 도전 앞에 타협하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정작 두려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세상이요 사탄입니다. 담대함으로 세상과 직면할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신일권 목사(장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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