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억하라(마가복음 14장 9절)

구원의 계획 2018. 6. 26. 07:59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억하라(마가복음 149) 2018.6.26

 

기독교는 기억하는 종교입니다. 사람과 공동체는 저마다 인생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과 역사는 선택적으로 축적된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 이성의 작동이 멈출지라도 무의식에까지 잠겨 개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의 역사를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여교역자회 5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와 총회가 열렸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대주제와 기억을 되새기며 새 희년을 향하여란 부제를 선포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여교역자들은 희년을 맞아 감사의 성만찬을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로 하여금 50년간 믿음의 길을 걷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여교역자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면서 미래 희년의 디딤돌을 마련했습니다. 기억은 한국 초대교회 전도부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갔습니다. 전도부인은 한국 개신교 초기의 유급 여성 사역자였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유교가 강했던 시대에 여성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전도부인들은 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안방의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성경과 찬송가를 팔았고 한글을 가르쳐 주며 복음을 전했던 권서인(勸書人)이자 복음전도자였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곳마다 생명과 평등의 복음으로 새로 태어난 신자들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선교사의 조력자였지만 그들의 활동으로 한국교회 여신도회의 지도력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여성 신도들을 조직화했고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독립운동과 만세운동을 추동하는 힘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복음의 평등성을 이 땅에서 실현했던 것입니다.

 

19681월 경동교회에서 열린 기장 여교역자회 창립총회에서는 총회의 목적을 여교역자들의 자질 향상과 지위 확보 등을 도모하는 것에 중점을 뒀습니다. 또 여교역자 간 유대를 강화하며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일을 천명했습니다.

 

지난 50년간 여교역자회는 주어진 은사에 따라 사회 곳곳에서 증거자와 선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갈라진 남북 갈등의 고통을 직시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기 위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적 상황에 맞섰고 가정폭력 및 성매매 방지 등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군사주의와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로 연대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또 생명을 존중하고 인권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생태를 보존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땅의 여교역자들은 소외와 차별, 파괴와 슬픔, 절망과 아픔의 울부짖음이 있는 곳에서 소수자의 신음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생각나게 하는 중보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엔 날로 쇠락해 가는 농촌교회와 도시 빈민, 이주민의 공동체를 지키며 우리 사회의 연약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지난날 선배 여교역자들이 보여준 희생적 헌신과 성실, 그리스도의 인내가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장 여교역자회 회원들은 50년간 함께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린 뒤 세상 속으로 다시 흩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시간에 거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신앙의 역사성을 증거하며 산제사로 삶을 드리는 여교역자들의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곳곳에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길 축복합니다.

 

김은경 익산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