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성의 민심(요나 3장 1∼10절) 2018.7.21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다시 하나님께 붙들려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사흘길이나 되는 큰 성에서 단 하루 말씀을 전했는데 니느웨성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의 말씀을 듣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표시입니다.
니느웨성에 대대적인 회개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니느웨왕도 회개에 동참하고 대신들과 상의하여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조서’를 내립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백성들의 회개운동과 왕의 조서, 어떤 것이 먼저인가요. 저는 왕이 조서를 내려 백성들이 회개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했었는데 성경을 세밀하게 읽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왕의 조서보다 백성들의 회개운동이 먼저 나옵니다. 왕이 조서를 내리기 전에 이미 니느웨성에는 백성들 사이에 회개운동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고 왕은 단지 그 회개운동을 사후에 승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왕이 백성들 여론에 떠밀려서 조치를 내리는 듯합니다.
니느웨성의 회개운동은 ‘아래로부터의’ 회개운동입니다. 아래 백성들로부터 시작된 회개운동이 위로 왕과 대신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백성들의 회개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면 왕의 조서는 위로부터의 개혁인 셈입니다.
니느웨 왕의 조서 내용은 어떤가요. 니느웨 왕의 조서는 꼼꼼합니다. 막연하게 진행되던 백성들의 회개운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습니다. 금식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고 세세하게 규정합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악과 강포에서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시행령을 선포한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조서에서는 금식을 하고 베옷을 입어야 할 대상에 백성뿐 아니라 짐승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구체적으로 ‘소 떼와 양 떼’(7절)라고 명시합니다. 죄지은 것은 인간들인데 애꿎은 짐승들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나요. 짐승들을 회개운동에 동참시킨 예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종교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왕의 조서 때문에 니느웨성의 소 떼와 양 떼가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끼니때가 되었는데 여물도 주지 않고 생전 입어보지도 못한 껄끄러운 베옷을 입혀 놓았으니 말 못하는 짐승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니느웨성은 소 떼와 양 떼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로 자못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짐승을 키우는 백성들도 그렇지요. 왕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지만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 툴툴거렸을 것입니다.
왕의 조서는 니느웨 백성들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한 것일까요. 저는 요나서를 읽으면서 왕이 어떻게 이런 코미디 같은 조서를 내렸을까 늘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왕이 혼자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대신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하여 마련한 방안이기에 더욱 기가 막힙니다. 전쟁에만 익숙했던 탓일까요.
위로부터의 개혁은 이렇게 생각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 수가 있습니다. 모든 개혁에는 관(官)의 일방적인 명령이나 강압적인 지시보다는 민(民)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관은 민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 일엽편주(一葉片舟)일 뿐입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기는 내를 막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행차할 때 어떤 백성이든지 억울한 사연이 있으면 징을 치고 왕에게 직접 하소연하게 했습니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반영하는 것이 지도자의 일입니다. 촛불혁명 1년을 지내고 3·1운동 100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과연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을까요.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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