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시는 예수님(누가복음 17장 11~19절)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보면 주인공 로캉탱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도 힘없고 피곤하고 추잡하고 우울한 생각을 되씹고 있는 여분의 존재였다.”
여분의 존재라는 표현은 없어도 되는 존재이며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고 연극 무대의 엑스트라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인생의 비참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난다 긴다 하는 사람도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허약해지며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점점 여분의 존재 같은 모습이 돼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움켜쥐고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건강과 권세를 누리고 산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린다고 해도 마치 탄산음료로 갈증을 해결하는 것같이 순간의 만족밖에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이유를 분명히 진단합니다. 인간이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욕심부리고 움켜쥐다 결국 소외되고 여분의 존재로 전락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 온전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에 불순종하고 죄를 범한 인간은 두려움과 한숨 좌절만을 손에 움켜쥐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므로 인간에게 불행이 찾아왔다면 이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은 간단합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능력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갈 길은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만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도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가 그에게 하나님께 되돌아갈 기회를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여분의 존재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같은 민족의 고혈을 뽑아 세금을 걷었던 삭개오의 경우는 어떤가요.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던 삭개오를 만났을 때도 예수님은 삭개오를 존귀하게 여겨주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모든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과 존중의 표현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외모를 보고 우리를 여분의 존재로 취급하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며 항상 주인공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월이 흘러 늙고 병들고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더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존귀함을 회복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언제나 우리를 가장 소중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을 믿고 주인으로 영접하기를 바랍니다.
김병선 사관(구세군 음암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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