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장 35~43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은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모두 죽었다고 하며 회당장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울며 심히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가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있습니다. 아픈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집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회중들에게 한 마디 하십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삶과 죽음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하십니다. 긴 이야기가 아니라 단 한 마디로 이 긴장된 순간을 풀어내십니다. 아람어로 ‘소녀야 일어나라’를 뜻하는 이 한 마디에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팽팽한 긴장은 무너지고,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며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보여주신 게 아니라 이 세상의 권세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이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전염성이 높아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데 백신도 치료약도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요즘처럼 죽음의 공포를 가까이 한 적은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내게 접근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책은 없는데 병은 무섭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연일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100여일 만에 세계가 죽음의 공포에 쌓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류도 거래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무서운 것은 코로나19보다 이후 우리에게 닥칠 경제적, 사회적 위기입니다. 과거 IMF 위기 때만 하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우리만 잘하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 세계가 다 함께 힘들게 되었으니 위기가 어떻게 극복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위기가 오면 결국 우리 공동체의 약한 자들이 무너집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한 자들은 이런 위기가 오면 잊히고 버려지기 쉽습니다.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데 주변까지 챙겨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기적이 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이미 우리는 IMF 위기를 지나면서 이런 일을 현실로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위기는 극복했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생명의 가치입니다. 효율과 경쟁만이 판을 치는 죽음의 현장에서 우리의 부모들, 우리의 자녀들은 그 절망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갔습니다. 한 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절망, 슬픔과 통곡이 지배하고 있던 그 긴장의 현장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소녀에게 일어나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 죽음과 마주하며 다가올 위기로 두려움에 떠는 이 땅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바로 내게 와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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