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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복음을 알라(롬3:21-31)

구원의 계획 2011. 6. 28. 19:15

가장 비싼 복음을 알라(롬3:21-31)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  김석주 목사


오늘 말씀은 의로움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설명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죄부터 소멸하고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는 죄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므로 내 죄를 없이 해 주셨고, 의롭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운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을까요? 죄지은 사람이 양을 한 마리 끌고 제사장에게 찾아옵니다. “내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사람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죄인의 손을 거두어서 양의 머리에 뒤집어 씌우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죄가 없어집니다.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양이 다 가져갔습니다.

 

 죄를 뒤집어 쓴 이 양은 “죄의 값은 죽음”이기 때문에 이 양을 대신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양을 죽여서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죄인은 의로워지고 양은 죄지은 사람 대신에 죽는 것입니다. 양의 죽음을 지불하고 내가 죄 사함을 받고 나는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 방법으로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방법을 행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제물로 바치니까 그 조그마한 유대나라에서 양들이 일 년이면 수십만 마리가 제사용으로 죽어갔습니다. 죄는 사람이 짓고 죽는 것은 양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양의 피를 보시고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왜 그런 제사를 안 드립니까? 기독교 진리의 제일 중요한 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교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어야 예수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대신 제물이 되어서 제사를 드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약시대 같이 짐승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 같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양이 되셔서 우리 위한 제물로 단번에 드려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속죄 제사의 십자가를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 하나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의로워졌다는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한 마리의 양으로 제물이 된 것에 대한 혜택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비싼 보혈로 우리가 의로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것을 로마서에서 중요하게 들고 나오는 것은 그 당시 종교인들이 의롭게 되는 모든 과정을 자신의 공로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 때문에 이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이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보내어서 예수님께 안수하므로 온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를 다 거두어서 예수님께 전가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예수그리스도을 믿음으로 의로워졌고 예수님은 내 대신 죄인 된 것입니다. 세상 죄는 예수님이 혼자서 다 뒤집어 쓴 것입니다. 그렇게 죄가 많은 예수님을 양과 같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양과 같이 피를 흘리고 살이 찢어지면서 제물이 되어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 죄를 다 짊어지시고 속죄 제사를 드렸으니까 이제는 구약시대 같이 일일이 양 잡아서 그렇게 제사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의 사건에 대한 믿음의 고백만 있으면 누구든지 구원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이 믿음의 고백만 있으면 누구든지 구원받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은혜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과 여기서 말하는 영적 죄의 개념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죄를 지었을 때는 거기에 상당한 값을 치루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도둑질을 했다든가 살인을 했다면 “당신은 죄의 비중을 봐서 1년간 감옥에서 있어야 된다”라고 법원 판결이 나면 그 기간만 감옥살고 나오면 됩니다. 그런데 영적 죄의 개념은 그 사람이 감옥을 1년간 살고 나온 것으로 의로워졌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죄는 어떤 것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구약의 제사를 보여주신 것 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대신 보내셔서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셨는데 믿지 않는 불신의 죄를 가장 큰 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큽니다. 여러분들이 친구들에게 “당신,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를 짓고 있어.” 그래 보십시오. 어떤 반응을 일으킵니까? “나는 이때까지 착하게 살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말을 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느냐 하면 죄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죄를 처러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무리 잘 믿고 죽어도 연옥에 간다고 합니다. 영적인 죄는 영옥에 간다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거기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방법으로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6:7에서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해여 심판에 대하여”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제일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인데 성령께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그 죄를 예수님이 없이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로움을 입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부터 없이해야 합니다. 어떻게 죄를 없앨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사를 드려 주시므로 우리의 죄는 모두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없다고 인정을 받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에서 판사가 당신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라고 판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이제까지 자기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깨달으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어찌 할꼬?”하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2:38)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3천 명씩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영적 사건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주의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은 자기의 선행과 자기의 의가 좀 쌓여서 구원 얻는 조건이 된다는 율법을 가르치니까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과 막 싸우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 짐은 가볍고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는 아주 쉬운 종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복잡하지도 않고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믿으면 됩니다. 그 구원의 길이 너무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값싼 복음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싼 값을 치르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 52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 55 :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롬3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계21:6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2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미리 예수그리스도께서 지불해 놓은 것을 믿음으로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종교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종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이 쉬운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금욕종교도 아니고, 고행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금욕이나 고행은 내 노력과 내 공로로 구원을 이루고 의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그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중세기 때 그런 흐름이 너무나 많아서 수도원이 그렇게 많이 생겼고, 그리고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구실로 산속으로 들어가는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하여 ‘오직 믿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위해서 온갖 헌신과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까지 맡아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여러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의로워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나를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해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가 헌신 봉사 충성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3:20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역할만 할뿐입니다. 그 다음 구원은 복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교리적 설교를 지금 바울이 하는 것입니다. 본문 로마서 3:24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양편에 흉악한 두 강도가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 강도 둘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려 둘 수 없을 정도의 흉악범들이라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강도가 예수님께 자기 죄를 인정하면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처형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는 의인이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부탁을 합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인데도 자기 죄를 인정하면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강도가 무슨 공로가 있어서 의로움을 얻고 구원을 얻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공짜로 그냥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선하고 내가 노력한 댓가가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 얻은 것은 공짜로 그냥 얻은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입양 문화가 많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아원에 가서 어린아이 하나를 입양하려고 찾아가서 자기 마음에 더는 아이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절차를 밟는데 그 아이는 그 고아원에서 제일 험한 1급 장애아입니다. 그런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데, 어떤 건강한 아이 하나가 “아저씨! 여기 저 같이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를 두고 왜 저런 아이를 데려 가려고 하십니까?”하고 묻습니다. 그 사람의 대답이 뭐냐 하면 “내 마음이다.” 그것입니다.

 

그리고 입양되는 아이를 보고 고아원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야, 너 같은 중증장애아를 왜 저 아저씨가 입양시켜 데리고 가려고 하는지 너는 아느냐?” 이 아이의 대답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도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그렇습니다. 왜 나같이 못나고 죄 많고 부족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시는지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 마음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의사로 저와 여러분들을 선택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이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들만 잘났다고 하고, 자기들만 구원받았다고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무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들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택한 줄 아느냐? 그런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이냐? 헬라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래 믿은 사람들의 하나님이냐? 오늘 처음 나와서 예수를 믿는 사람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무 공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사대로,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이 공짜로 은혜를 주어서 의의 옷을 입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예일대학교나 하바드대학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에 복을 받아서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일대학교에 신학대학 2학년에 다니는 샘슨이라는 학생이 다른 과에 다니는 베이커라는 친구와 함께 군에 입대를 했는데, 6.25전쟁이 한국에서 터져 한국에 파병되어서 중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했습니다.

 

1951년, 어느 날 베이커가 총에 맞아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베이커가 죽어 가면서 샘슨에게 말하기를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죽으니까 괜찮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하나님께 갈 텐데 나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안 받았다. 너는 앞으로 목사가 될 신학생이니까 내가 죽기 전에 빨리 나에게 세례를 주면 안 되겠냐?”

 

그래서 샘슨은 배낭에 항상 넣고 다니는 성경을 꺼내서 3곳을 읽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2:37-3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두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성경을 3곳을 읽어주고는 수통에 있는 물로 죽어가는 베이커의 머리에 부으면서 “내가 너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배낭에 있는 비상식량인 빵을 꺼내서 떼어서 손에 들고 “이것은 너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이다. 이것을 받아먹어라”고 하고 빵을 떼어서 입에 물려주었더니 베이커는 그 빵을 입에 물고 죽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누구든지, 값없이, 내가 아무 공로가 없어도, 공짜로, 하나님의 의사대로 우리를 선택해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감격스러운 구원의 축복을 이 사순절 기간에 깊이 묵상하면서 불신 가족들과 불신 이웃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전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이들이  여기 있고 그리고 성령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것 이라고 인(印)을 쳐 놓으시고 함께 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