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기존의 정통교회 교인들을 유혹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 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도 자신들처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다. 이때 사용되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바로 눅 4:16이다.
그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성경구절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개역성경).
언뜻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번 더 읽어보면 ‘지켰다’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은 정확하게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었다’고 말한다.
성경을 읽은 게 오늘날 ‘안식일을 지켰다’는 말로 이해가 될까?
다른 번역성경을 살펴보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 도착했습니다. 평소의 습관처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셨습니다”(눅 4:16, 쉬운성경).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 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눅 4:16, 공동번역).
“He went to Nazareth, where he had been brought up and on the Sabbath day, he went into the synagogue, as was his custom. And he stood up to read.”(눅 4:16, NIV)
‘지켰다’라는 의미가 되려면, 적어도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예배에 참석하셨다’는 식으로 기록되었어야 했는데 그러한 표현을 살펴볼 수가 없다. 위 성경구절들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신 것을 성경은 ‘자기 규례대로’라고 기록해 놓았다. 무슨 말인가? 쉬운성경은 ‘평소의 습관처럼’이라고 했고, 공동번역은 ‘늘 하시던 대로’라고 했다. 영어성경인 NIV도 다르지 않다.
예수님께서 평소의 습관대로 무엇인가를 행했을 뿐이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행하시 듯한 행동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헬라어 성경에서 잘 나타난다. 눅 4:16의 ‘자기 규례대로’라는 말을 헬라어 성경은 ‘에이오또스’(τὸ εἰωθὸς)라고 했다. 이 단어의 원형은 ‘에또’(ἔθω)로 단순한 ‘습관’에 해당된다. 존 놀랜드도 같은 의견이다. 예수님의 습관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던 습관을 가리킨다고 했다(존 놀랜드, WBC 누가복음(상), 솔로몬, 2003, p.402).
"καὶ ἦλθεν εἰς Ναζαρά οὗ ἦν τεθραμμένος καὶ εἰσῆλθεν κατὰ τὸ εἰωθὸς αὐτῷ ἐν τῇ ἡμέρᾳ τῶν σαββάτων εἰς τὴν συναγωγήν καὶ ἀνέστη ἀναγνῶναι”(눅4:16, GNT).
물론 ‘규례대로’가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 성경구절도 있다. 눅1:6을 예로 들어보자.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6, 개역성경).
이때의 ‘규례대로’를 쉬운성경에서는 “잘 지키었다”로, 공동번역성경은“어김없이 지키며”로 번역, 연결시켜 놓았다. 물론 이때 헬라어 성경은 위의 ‘에또’(ἔθω)와 다른 단어로 쓰였다. ‘디카이오마신’(δικαιώμασιν)이다. 디카이오마(δικαίωμα)가 원형이다. 한국어로 ‘규례대로’는 같지만, 헬라어 단어와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의미를 영어성경 NASB는 “requirements of the Lord”라고 했다. 주께서 요구하신 것들이라는 의미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라는 말이다.
“ ἦσαν δὲ δίκαιοι ἀμφότεροι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πορευόμενοι ἐν πάσαις ταῖς ἐντολαῖς καὶ δικαιώμασιν τοῦ κυρίου ἄμεμπτοι”(눅 1:6, GNT).
따라서 눅4:16의 ‘규례대로’라는 말에는 ‘지켰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습관에 따라’(규례대로) 회당에 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가셨나? 그 이유를 역시 성경이 잘 말해주고 있다. 바로 윗 구절인 눅 4:15절이다.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눅 4:15, 개역성경).
그렇다. 바로 가르치시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자주 회당을 찾으신 것이다. 그곳에 가야 유대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달인(?)들도 많이 있는 그 회당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셨을까?
눅 4:16의 의미 또 한 가지는 뒤따라오는 18-19절에 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이사야 선지자의 글(사 61:1-2)을 인용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자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꿈꾸고 기대했던, 메시야의 오심과 그로 인해 메시야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은혜를 언급한 내용들이다(존오스월트, NIV 적용주석 이사야, 성서유니온선교회, 2004, p. 868). 예수님은 그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봤던 그 일이 예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화가 났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회당은 물론 동네 밖으로 더욱이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갔다. 죽이려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지키려 했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났겠는가?
눅 4:16과 연결된 다음 문단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유비관계를 이룬다. 4:31-37절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4:32-41절이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무서워 떠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4),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41) 등이다. 귀신도 예수님이 누구인줄 아는데, 소위 율법의 달인(?)이라 불릴 수 있는 유대인들은 왜 그 사실을 모르느냐는 식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회당을 찾은 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 4장 맨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확인시켜 준다.
날이 밝자,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들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일의 장소로 회당도 포함됨을 명확히 밝히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눅 4:43-44, 개역개정판).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회당을 습관대로 찾으신 이유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그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논리를 펼칠 만큼 예수님의 ‘어떠함’을 따르는 자들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다. 오직 복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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