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은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
글/김병덕 목사
고린도전서6:13-20절을 보면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사람은 귀가 얇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것이 맞는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도무지 누구 말이 옳은가 분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세상일은 조금 실수를 해도 괜찮지만 영의 일을 실수를 하는 순간 아니 흔들리는 순간 영원한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릅니다.
왜 모르냐면 그것은 믿음의 말을 듣다가 행위의 말을 듣다가 하면서 양쪽 말을 들으면서 이 말을 들으면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또 믿음의 말을 들으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보니까 나중에는 믿음이라는 근본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예수 믿어서 구원 받으라는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하고 또 저렇게 해야 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이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행위를 강조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믿음이 자리하기 보다는 과연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부호만 커져가게 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만 듣게 되면 믿음이 자리하게 되고 율법을 강조하게 되면 율법주의가 되고 이것을 둘 다 아주 반죽을 잘 해서 먹이면 이 둘이 자리하게 됩니다. 분명히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율법의 행위를 잘못하면 구원에서 탈락을 할 것 같아서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믿으면 그 믿음대로 구원을 받게 되고 믿어도 행위를 잘못하면 탈락할 수 있다고 믿으면 사람은 완전한 행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 나 슬피 울며 이를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어떤 사람이 많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믿어도 무엇을 잘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습니까? 전자 보다는 후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심하면 극단적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중 띠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보다는 차라리 극단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 해석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믿음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가 무엇을 잘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오해를 하게 되고 결국에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토해 버리게 됩니다.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쌍한 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 나름대로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했다가 자기는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면 그것처럼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 합니다. 누가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느냐면 교회에서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는 그 사람이 누구라도 그 사람을 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바로 그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관을 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를 보면 너무도 자기 영혼에 대해서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열심을 내고 있다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천국에 가려고 열심을 내는 그 행위가 천국에서 더욱 큰 자가 되려고 하는 그 행위가 오히려 천국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정말 힘들게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저 사람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나와 똑 같이 구원을 받는다면 왠지 모르게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결국에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의 심리가 더구나 좀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 본 성경 하나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기초가 뿌리 채 뽑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해석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에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같이 해석이 된다면 그것은 무조건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웨슬레라도 저는 아니 칼뱅이라도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는데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해석이 안 되고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이렇게 해야 하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들이라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제가 성경을 보는 가운데 사도 바울이 만약 그런 말씀을 기록했다면 저는 성경을 더 이상 안 봅니다.
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조건이라도 붙어 있다면 저는 더 이상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너무 쉬워도 나는 사단에 의해 반드시 그 일에 대해서 실패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담도 단 하가지 과실로 실패를 했는데 제가 어떻게 그 조건을 다 지킬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밥 먹는 것과 음란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런 말씀들을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고 그저 육적인 음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식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먹는 것을 식물이라고 합니다. 어떤 식물입니까? 자기 배를 위해는 식물을 그리고 배를 위해 먹는 식물을 다 폐하시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식물은 바로 율법의 행위입니다. 신령한 식물이 아니라 자기 배를 위해서 그리고 배를 위해 있는 식물을 다 폐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먹는 식물이 아니라 바로 율법의 행위를 가르쳐 주는 말입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배를 위해 먹는 식물 그런 식물은 몸을 음란하게 하는 식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음란이 무엇이냐면 바로 오직 주를 위하지 않고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음란입니다. 주를 위하는 일은 바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인데 식물로 인하여 구원이 방해가 되고 그것이 바로 음란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을 위한다고 하는 그들의 행위가 오히려 음란을 하는 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행위들을 하면서 그것을 보며 주를 위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 율법의 행위가 나타나는 순간 음란이 되고 그것은 주를 위하는 일이 아님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몸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자기 몸을 위해서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구원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다시 살리신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은 율법의 행위의 식물을 먹어서 그것을 행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와 똑 같이 우리를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식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의 식물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 주셨음을 보여 주셨고 그것을 믿는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면 당연히 주님께서 다시 사셨으면 나 역시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이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지체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한 몸이면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셨으면 나 역시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을 믿으므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온전히 믿지 않고 행위의 어떤 조건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제 율법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살기 위해서 그것을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기와 같이 여러 남자를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강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기도 하고 또 율법도 잘 지켜서 구원을 받겠다고 합니다. 창기의 지체를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적으로 창녀와 관계를 가진 것으로 창기의 지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두 남편을 섬기는 창기의 지체를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냐 아니면 율법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예수도 좋고 율법도 좋고 하면서 두 남자와 연예를 하고 있습니다.
창기의 지체인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그들이 창기의 지체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는줄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하는 그들이 율법을 사랑하고 있고 율법과 아주 뜨거운 연애를 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취해 그것을 안 지키는 사람들을 오히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창기가 정결한 신부를 정죄하는 이상한 형국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아담과 하와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보여 주신 예표입니다. 누가 창기입니까? 바로 교회가 창기가 되어서 율법을 강조를 하고 있고 그것을 지키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율법을 강조하는 교회에 나가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창기와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이 육체가 됨으로서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육체가 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으로 한 몸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빠져 그 행위를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되면 멸망을 합니다. 율법의 행위는 다 우리 육체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자는 육체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한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은 육체로는 불가능 합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에 빠져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육체가 되고 싶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는 모두 사람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고 그것이 배를 불리는 식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육체가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한 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으로 한 몸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육체가 되고자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고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어떤 육체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되고 영이 되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고 육체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영인 줄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내 육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육체를 아무리 잘 가꾼다 해도 아니 율법을 잘 지킨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와 한 영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는 자꾸 육체의 모양을 내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믿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행위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고 있고 그런 행위를 보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모든 구속의 역사를 다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에 상관된 법을 쫓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6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이것은 영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법으로는 대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의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육체에 상관된 법대로 하면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대 제사장이 되실 수 없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대 제사장으로 믿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한 몸이 되는 것 이 모든 일은 육체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영의 일을 믿는 것이 예수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육체의 간음입니까? 만약 이것이 육체적인 간음이라면 구원론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가 아니라 나의 의인은 믿고 또 육체의 간음을 하지 않아야 살리라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간음을 해도 좋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고 바로 해석이 안 되면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죄 가운데 간음 빼고는 다 몸 밖에 있습니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하는 것은 몸 밖에서 하는 것입니까? 성경을 볼 때 좀 생각을 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간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간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간음도 몸 밖에 있는 죄입니다. 지금 이 죄는 무슨 죄를 말씀하고 있느냐면 바로 영적인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짓는 죄는 다 몸 밖에 있습니다. 간음뿐 아니라 시기 질투도 다 몸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죄는 다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율법을 어기는 그런 죄가 아니라 영적으로 짓는 죄이며 이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셨는데 사람들은 간음을 하면서 몸에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며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 믿기 때문에 자기 몸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몸에게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마치 의로운 것으로 오해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죄를 자기 몸에다 짓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너희 몸이 누구의 것입니까?
그런데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육체의 모양을 내는데 열심을 다 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전과 창기의 지체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14절을 보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성령의 전이면 당연히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창기와 간음을 하는 자는 같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하느냐면 자기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다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제가 드린 말씀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율법은 내가 주님께 영광을 돌려도 그것은 내 영광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든 안 돌리든 그것은 나를 통해 나타났으면 내 영광이 되는 것이고 주님의 영광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주님의 영광입니다. 내 육체를 통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그것을 주님께 영광 돌린다 해서 주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내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렇게 자기 몸에 되를 짓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고 창기와 한 몸이 되었다고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전인 성도가 있고 육체로 창기와 합한 자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교린도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나를 통해 내 육체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창기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주와 합한 한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성도가 성령의 전이고 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것은 내가 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전은 내가 그 어떤 일을 했어도 그것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경륜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다고 하는 일이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육체가 되는 일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간음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통해 그 어떤 일을 했어도 그 일을 가지고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성령의 감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또 그 안에 성령이 임재 해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좀 어렵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육체에 있던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예수그리스도와 합한 한 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육체로 행한 율법의 행위를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것이 주의 영광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것을 주님의 이름만 도용해 영광을 돌리는 아주 나쁜 일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학비를 대 주셨는데 내가 밤잠을 안자고 또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도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수석을 했습니다. 이 영광을 아버지께 돌립니다. 과연 아버지가 영광을 받은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영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나타낸 것이고 아버지를 모욕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창기와 간음하는 자들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간음을 하면서도 육체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몸에게 짓는 죄입니다. 나를 주장하는 그 자체가 내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한 행위를 주장하는 자체가 내 것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는 성도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 자기가 죽은 자를 살린 것을 자랑했습니까? 비록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능력을 받아 행했지만 사도바울은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또 그것만을 알기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창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지금 간증하고 있는 것들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만 빙자를 하고 있고 자기들의 육체를 통해서 이루어 진 일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육체에 있는 자들이고 창기와 합하여 간음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모르고 자기가 행한 율법의 義인 은사적인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해 놓고서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고 자기들이 한 일 사람들이 한 일을 가지고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내 몸으로 내 영광을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어떤 것을 했다 해도 그 일로 세상 모든 사람이 칭찬을 한다 해도 그 일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창기나 하는 짓입니다. 자기가 창기와 한 몸인지 또 예수 그리스도와 한 영인지도 분별을 못하고 자기 육체를 자랑하기에 정신이 다 팔려 있습니다.
육체가 되면 죽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부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신랑에 대해서는 자랑을 하지 않고 자기 신랑 이름을 대면서 내가 이것을 했고 내가 저것을 했고 한다면 그 신랑이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 그 혼인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내가 했어도 신랑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쯤은 세상 사람도 다 아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보다도 못하게 자기를 값으로 사신 주께 오히려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 제사장으로 하나님보좌 우편에 계신 것이 나에게 어떤 은혜인가를 예수, 예수, 예수그리스도 전해도 끝이 없이 그것만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설령 내가 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를 사셨다고 믿는다면 어찌 감히 내가 한 일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주인에게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창기와 연합이 되어서 그런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고 서로 간증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인 사람은 자기 육체를 통해 이룬 일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라면 절대로 내 육체의 일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외에 자랑 할 것이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값으로 산 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이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자는 절대로 성령께서 임하시지 않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나를 분별하여 나를 지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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