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목사도 있다.
어느「대리운전」목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아~~한국교회여!
지난 3일 저녁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서 대리운전에 뛰어든 김성권 목사(55)가 강변북로 동호대교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날 저녁 김목사는 중고차 운송을 위해 나갔다가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다른 차들이 피해가도록 수신호를 보내던 중 달려오는 차에 치여 변을 당했다. 이날 저녁 7시 40분 경 가해자 조씨는(30)는 "앞차 때문에 차선을 바꿨는데 피해자가 길 위에 서있는 걸 보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라고 진술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목사는 전북 김제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셋째였던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더 이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70년대 농촌 현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 역시 중학교를 마친 다음 스무살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보냈다. 그러나 농촌 생활은 그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상경의 모험을 했고, 한 공업사에 취직했다.
취업을 하긴 했지만 객지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아는 사람도 없는 객지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며, 숱한 날들을 굶주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배움의 꿈을 잃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고 싶은 꿈을 안고, 몇 년 동안 주경야독의 힘겨운 싸움 끝에 마침내 그는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따냈다.
그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일차적인 꿈을 이룬 후, 이번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소명이 타오른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 침례교 신학교에 합격해서 어엿한 신학도로 변신했다. 신학을 공부할 때도 등록금과 생활비는 언제나 자신의 몫이었다. 그래도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소명감 때문에 무사히 신학 수업을 마쳤다. 그리고 2000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천신만고 끝에 목사가 되었지만 그를 보살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는 맨손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사 안수를 받으면 형편이 풀릴 수 있다는 막연히 기대가 송두리 채 무너져내렸다. 개척을 위한 재정도. 개척 맴버도 없는 상황에서 불타는 열정만 갖고 교회를 세워가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그에게 개척의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가정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고, 매달 내는 임대료, 그리고 교회를 성장시켜야한다는 무거운 짐 등이 늘 그를 괴롭혔다.
거기에다 사모 이씨조차 8 년전부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살림을 제대로 못했다. 그런 형편이다보니 5년 전부터는 가정의 생활비와 교회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김목사가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그런데 목사의 신분으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회사나 아르바이트자리도 목사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채용하기를 꺼려하는 현실이었다. 결국 목사의 신분을 감춘 채 쉽게 할 수 있는 대리 운전을 택했다. 목회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밤에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개척교회를 이어가는데는 적격이었다.
김목사의 대리운전은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낮에는 사모를 대신해 가사 일을 하면서 전도와 기도 등 목양에 힘쓰다가, 밤에는 밤잠을 설치면서 대리 운전에 몰두한 것이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온 밤을 새우며 콜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하지만 대리 운전 역시 쉽지 않았다. 매일 밤을 세우기 때문에 건강을 헤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항상 일감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 밤중의 운전은 위험천만일 때가 많았다. 그래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밤 일이 안성맞춤이었고, 그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러는 사이에 딸 은수(가명)가 자라 고 3이 되었다. 은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었었지만 올해들어 미술학원에 처음으로 갈 정도로 뒷바라지를 못했다. 김목사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교회를 세워가는 것도 힘들고, 가정을 꾸려가야하기 때문에 그 흔한 학원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딸의 등록금까지 벌어야하는 무거운 짐이 그를 괴롭혔고, 지난 해부터 눈물을 머금고 교회를 접었다.
교회 문을 닫는 그날 김목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사모 역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가장 서러웠던 것은 눈물과 땀을 쏟아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교회까지 개척했는데 냉혹하기는 믿지 않던 시절이나 목사가 된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이었다. 개척 교회를 세워놓고 마치 사업을 이루듯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회나 교회 밖의 차이점이 거의 없는 냉혹한 현실을 밤잠을 설쳤다.
그래도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고, 딸의 등록금까지 마련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김목사는 며칠 동안 기도원에서 마음을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딸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는 일감을 하나라도 더 받아야 했다. 그렇게해서 저녁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고, 낮에는 차를 운송해 주는 탁송기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몇년 사이에 은수가 성장해서 올해 성신여대와 경희대에 수시 입학 원서를 넣었다. 며칠이 지나면 합격 여부가 결정될 것인데 김목사는 그 소식을 못듣고 변을 당했다. 김목사는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위한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개척교회 시절에는 노숙자들이 찾아오면 먹을 것을 주고, 재워주기도 하고, 심지어 용돈까지 주곤 했다니 그는 참 목자였던 셈이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동네 사람들은 김목사가 어떤 가정에는 기저귀와 분유까지 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어느 대리운전 목사의 죽음! 한국의 교회는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서울 시내에서 택시 기사 혹은 대리운전 기사, 탁송 기사 등으로 뛰어든 목회자가 어림잡아 약 1천여명이라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혹시, 그건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내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결코 개인의 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건 한국 교회의 문제요, 모든 크리스챤의 문제다! 왜 그럴까?
성경에서 교회가 언급될 때, 한번도 교회를 크게 세우라거나, 교회당을 아름답게 지으라고 한 적이 없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제도 혹은 사람 수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사람이 곧 교회인 셈이다. 성경적 교회관은 사람이 곧 교회다. 사람 중심의 교회관은 예수님이나 바울의 교회관과 일치한다. 주님은 한번도 교회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바울 역시 교회는 수가 많아야 한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주님과 바울, 그리고 사도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했고, 전심을 다해 사람에게 투자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그들의 사역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한국교회는 여전히 중세시대의 카톨릭의 교회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타종교의 공적 사상에도 불들어 있는 듯하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가 아닌가? 사도들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회관을 견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교회는 더 이상 건물에 돈을 투자하거나 공간 확보에 힘쓰는 일보다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교회가 성장하면 공간을 늘일게 아니라 분립 개척을 해보면 어떨까?
교회 개척에 성공하려면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개척자의 소명감이요, 다음은 개척의 동역자요, 그 다음은 재정적인 뒷바침이다. 이 세가지를 갖추면 개척의 자립은 시간 문제다. 이 요건만 갖춰지면 지금도 서울 시내 어느 지역을 가도 개척은 가능하다. 주변에 신앙 생활을 하다가 중단한 사람만 건져도 쉽게 자립할 수 있다. 문제는 전도할 자원과 교회를 유지해갈 임대료, 그리고 목회자의 사명감이다.
그런 형편이기 때문에 이 세가지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개척교회가 일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큰교회들이 이 세가지 요소들을 준비해서 교회 개척을 시도하면 틀림없이 민족 복음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대형교회가 세워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작은 교회가 여러 개 세워져서 그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특히 현대의 사회 구조와 현상을 생각할 때 이제야말로 교회가 사람에게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당화시켜준다. 사회 구조로 볼 때 10년 뒤의 한국 교회는 엄청난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우선, 교회에 젊은 층이 즐어든 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예전에 교회가 정부에서 시행하는 산아제한 정책에 무분별하게 편승하면서 한 자녀, 혹은 두 자녀만 낳다보니 이제는 젊은 층이 자연적으로 감소된 것이다. 지방의 수많은 초등학교들이 문을 닫고, 학생 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20년만 지나면 한국 교회의 교회당이 텅빈 현상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새가족 전도에 힘을 쓰는 것보다 수평으로 이동해서 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도 교회의 지각 변동의 요인 중의 하나이다. 최근에 개척 후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교회들은 대부분 수평 이동해서 자리를 채운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전도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당을 늘이고, 건물을 새롭게하는데 재정을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지금 예배당이 좁다고 재정을 투자해서 건물을 지으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에게 재정을 투자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제 한국 교회는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를 돕고, 개척교회를 섬기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함께 사는 길이다.
생각해보면, 교회의 규모가 크게 되기까지 지방의 교회에서 신앙을 훈련받아온 분들의 공로가 있었지 않은가? 이제 농어촌 교회는 도시에서 돕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기에 도시의 큰 교회는 농촌 교회를 의무적으로 도와서 큰교회와 작은교회, 도시교회와 농어촌 교회가 함께 가야 소망이 있는 것이다. 개척교회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자립 교회가 전국적으로 약 27,000교회라고 한다. 50명 이하의 교회는 약 39,000 교회이다.
그런 현실인데 한국 교회가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개인의 능력, 자기의 일 운운하면서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제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교회를 개척해 놓고, 가정 생활의 어려움, 교회 운영의 짐, 그리고 성장에 대한 압박감 등 개척교회의 삼중고를 해결하려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목회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오죽 했으면 대리운전 기사, 탁송 기사로 뛰어들었겠는가!
이같은 사회적인 측면 외에도 역사적인 교훈도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1백여년 전 한국교회에 토마스 선교사를 파송했던 웨일즈의 하노바 교회의 현실은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지금 하노바 교회는 전체 교인이 7명이며, 그 중에서 가장 젊은 교인이 70살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 경우는 한국의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필자가 서산시 주변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주변 농촌 교회의 현실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시 인근 주변 교회에서 가장 젊은 분이 60살이라니! 하물며 도시와 멀리 떨어진 농어촌의 현실은 어떻겠는가? 이제 한국교회가 어느 대리운전 목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다. 미자립, 개척교회를 생각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아~~~ 한국교회여!
송삼용목사/ 하늘양식교회 담임,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brentry@hanmail.net 세상의 빛, C-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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