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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은밀한 신앙

구원의 계획 2011. 10. 27. 22:21

나 혼자만의 은밀한 신앙

                                            - 존 라일

  사람들 앞에 신앙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이는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신앙생활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신앙의 모습이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지극히 해로운 결과를 내기도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듣기 좋은 설교자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늦은 시각까지 모이는 대규모 집회에 끊임없이 참석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고, 감칠맛 나는 강단의 말씀을 끊임없이 탐하는 식의 모습은, 모두가 지극히 건강하지 못한 기독교 신앙의 모습을 만들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영혼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신앙의 모습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은, 교회의 어떤 설교에서 무언가 굉장한 것을 느끼고서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이끌려 굉장한 신앙을 입으로 고백합니다. 실제로는 그런 수준에 미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이르러 보겠다고 끊임없이 종교적인 자극들을 추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마치 마약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처럼 아무리 자극을 받아도 전혀 효력이 없는 때가 오게 되고 탈진감과 불만족감이 마음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하여, 결국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앙의 상태에 다시 빠지고 세상으로 완전히 돌아가 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겉으로 보이는 신앙만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임하실 때에 폭풍도 아니요 불도 아니요 지진도 아니요 오직 “세미한 소리”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을(왕상 19:12) 기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저는 목소리를 높여 경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물론, 저도 겉으로 드러나는 공적인 신앙의 모습이 쇠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각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오가는 그런 은밀한 신앙이 자라기를 원합니다. 가정생활에서 아름답게 드러나는 그런 사사로운 신앙이 자라기를 진정 바랍니다. 그런 소극적인 은혜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기를 소원합니다. 그 은혜들이야말로 진정 성령이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신앙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신령한 사람들 사이에서 신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고 냉랭하며 비판적인 친척들 앞에서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보이고 언제나 참고 온유하며 사랑을 아끼지 않고 자비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절제할 줄 안다면,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최고의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의 모습이 더 많이 있어야 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땅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땅을 파고 뿌리를 살펴보아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저 흙이 가득 묻어있고 아주 투박하고 초라하며, 땅 바깥으로 항상 모습을 드러내는 잎사귀나 꽃처럼 멋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초라하고 못생긴 뿌리야말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과 건강, 활기와 아름다움의 근원입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는 곧바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나 혼자만의 은밀한 신앙이 생명력 있는 기독교의 뿌리입니다. 이것이 없이도 얼마든지 집회에서나 강단에서 멋지고 용감하게 나를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 크게 노래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질 수도 있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 곧 나와 하나님 사이의 은밀한 사사로운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죽은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방법이나 기회가 우리보다 훨씬 더 적었습니다. 휫필드Geroge Whitefield: 1714-1770나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혹은 로울랜드Daniel Rowland: 1713-1790가 설교할 당시의 사람들은 대규모의 특별 실내 집회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따금씩 야외에서 행해지는 전도 집회가 전부였습니다. 집회의 순서들도 멋지다거나 인기 있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들의 칭찬보다는 오히려 박해와 반대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기는 다양하지 못했으나 그 있는 무기를 잘 사용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더 신실하게 성령께 쓰임 받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의 숫자는 우리가 그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질과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훨씬 뒤쳐져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회심한 신자들은 마치 구식舊式의 의복이나 천 같아서 모양도 없고 투박하지만, 더 질기고 오래가고 그 색깔을 오래 유지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수많은 영적 갓난아기들보다 훨씬 안정되고 견고한 신앙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개개인의 은밀한 신앙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깊고 견고하고 고요한 성령의 역사를 더 추구했습니다. 홀로 성경을 읽는 일도, 홀로 은밀하게 기도하는 일도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과 늘 가까이 동행하였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높여 드렸습니다. 오오 여러분,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따릅시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보다 더 성령님을 존귀하게 합시다!

존 라일(John C. Ryle: 1816-1900) 19세기 영국 앵글리칸 교회의 복음적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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