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이를 버려두고(요한복음 4장 27∼42절) 2017.4.17
목사는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성도는 삶의 현장에서 설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를 구분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말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한 여성을 바라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으로 알려진 이 여성의 삶을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그는 이런 저런 이유로 영혼에 상처가 많은 여성입니다. 남편이 없다고 답하는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17∼18절)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여인은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그 변화는 일시적이지 않았습니다. 한순간의 깨달음과 은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28∼29절에 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여인은 우물을 떠나면서 가장 먼저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 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뒤 보여준 그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면 ‘물동이를 버려 뒀다’는 구절이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 안에 엄청난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여인에게 물동이란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단지 생활에 필요한 마실 물을 담는 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여인에게 물동이는 자신의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물동이는 마실 물을 옮기는 도구일 뿐 아니라 내면의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채우는 물동이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고 아무리 많이 담아도 늘 부족한, 그래서 그 무엇인가를 채우고 또 채우는 물동이였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우물가에 머물러 있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동이는 필요가 없습니다. 여인은 이미 예수님으로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처지와 버려진 물동이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멀쩡하지만 사실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닌지요. 몸도 지쳤고 마음도 지쳤으며 신앙도 지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상처와 괴로움이 우리의 물동이가 되어 하나씩 붙잡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서 때론 억울하게 빼앗기기도 하며 이리저리 채울 것을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새 삶을 주신 예수님을 기다린 만큼 여인이 만났던 그 예수님을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던 그 물동이를 과감히 버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워 나가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붙잡고 있던 물동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김도영 목사(호주 아들레이드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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