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선한 길을 걸어라(누가복음 24장 31절) 2017.5.6
심리학 용어에 ‘루시퍼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적 본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선 수많은 이라크군 포로들이 미군에게 생포됐습니다. 미군은 이들에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하다 언론에 대서특필 됐습니다. 미군 관계자는 군인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사과를 했지요.
루시퍼 효과를 주장한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전쟁 같은 악한 환경에 처하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마적 본능이 살아나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루시퍼는 선한 천사였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천사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곤 지옥을 관장하는 왕이 됐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을 다 갖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이 작동합니다.
지금의 한반도는 선한 본성이 작동하기 힘들어보입니다.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은 이 땅을 여전히 팽팽한 군사적 긴장상태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악한 본성이 더욱 활동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이런 현실을 아파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해 교회의 부흥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악한 본성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양적으로는 부흥했으나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들어냅니다. 이 땅에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강자들의 악함을 감추고자 약자를 힘으로 짓누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살려주기보다는 도적 바라바를 석방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털끝만큼의 악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시 유대인들의 악함을 고발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라 말했고 몸소 그걸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자신들의 허물을 잘 아는 존재인 예수를 살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악한 현실에서 예수는 희생양이 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자신들의 악함을 감추기 위해 선한 본성을 죽였는데 그것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군중들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자신들 안에 잠재됐던 선한 본성이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깨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부활의 증언자가 되기를 권면합니다. 이러한 부름이 있었기에 인류는 멸망에 이르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먼 사울이 아나니아를 찾아갑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회심한 사울은 바울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는 말씀을 주목합시다. 우리의 눈이 다시 떠지고 열려야 비로소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악한 세상에 살아도 악한 본성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현호 신부(대한성공회 동두천 나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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