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길에 놓인 고임목(예레미야 12장 1∼6절) 2017.5.4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방차 바퀴 아래에 고임목을 끼워 넣는 것입니다. 고임목이 제 역할을 해야 가파른 비탈길 위에서도 소방용수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화재를 안전하게 진압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를 받쳐주는 고임목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눈을 가리고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그들의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게 자라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일하시는 것이 옳습니까.”(렘 12:1∼4)
하나님은 도움 대신 오히려 예레미야에게 “지금보다 더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뺨을 맞고 옥에 갇히고 살해당할 위기를 겪습니다. 이어 배신을 당하고 구덩이에 던져지는 굴곡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시대 상황은 점점 더 가파른 비탈길로 치달아 내렸지만 그는 눈물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 때문에 말과 경주하고 물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는 예레미야를 위해 질문의 답을 스스로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은 말과 함께 경주할 수 없고 창일한 물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죽음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을 정복하는 불가능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고임목이 돼 죄악과 사망의 비탈을 치달아 내리는 인생들을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그 십자가 고임목의 자리에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은 사라지고 오로지 은혜만 남게 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상황도 예레미야 때만큼이나 가파른 비탈길인 것 같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교회학교, 대체 그 속을 알 길이 없고 소통하기 막막한 청소년들, 신앙적 회의로 가득하고 깊은 무기력에 빠져있는 청년들,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적인 관심으로 가득한 장년들. 분쟁과 다툼으로 상처 입은 교회, 세상에 신뢰를 잃고 손가락질 받는 교회.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사역은 말과 경주하는 것 같고 물속에서 살아야 하며 끝을 모르는 위기감에 침묵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고임목을 딛고 선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은 고임목의 자리에서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며 그 뒤를 따라 피 흘리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 탄원할 때, 주님은 기꺼이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결국 개혁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은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비탈길이 아무리 가파르고 위기와 절망으로 점철돼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고임목 위에 서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합시다. 하나님은 십자가 고임목을 딛고 그 위에 몸부림치며 버티고 서 있는 우리를 통해 개혁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누가 시대의 비탈길에서 십자가 고임목을 딛고 선 사명자가 되시겠습니까.
조정환 전도사(총신대 신대원)
이 설교문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전국 신학생 설교대회 대상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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