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찬송 :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84장(통 9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장 29∼39절
말씀 :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기준이고 표준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일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회당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말씀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교회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교회에서의 가르침이나 사역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이 교회 안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으로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교회가 회당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37∼38절)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전과 다르게 특이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합니다. 본문에서 주를 찾는 이들은 가버나움의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그곳에 가지 않고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하십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자신을 찾는 사람한테 가는 것이 바른 행동이며 상식적인데, 예수께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 고치는 것, 귀신 쫓는 것 때문에 찾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는 그저 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면 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곳에 가기를 작정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전도를 하려고,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입니다. 단지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온 게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 형태가 가버나움의 사람들처럼 돼선 안 됩니다. 복음은 회당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회당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이웃으로, 섬김의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이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의 사역입니다.
성도 여러분과 교회가 체험에만 머무르는 신앙 혹은 사역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 체험에만 머무르는 신앙과 사역이라면 가버나움의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무서운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3∼24)
예수님께서 “내가 이 일 때문에 왔노라”라고 말씀하시는 유일한 일은 전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로 이곳에 오셨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복음을 전파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선명 목사(인천 평화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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