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사람(마태복음 5장 9절) 2017.6.5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의 인사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유대인의 인사말이 있습니다. ‘샬롬’입니다. 화평하냐는 물음이요 동시에 화평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인사말이 나왔을까요. 평안하지 못해서입니다. 화평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권위를 부여받았음에도 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바라보았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워 보여 결국 따먹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한계인 그 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가 깨져 두렵고 무서워 피하고 숨어버리는 불화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땅까지 저주를 받았으니 자연(피조물)과의 관계도 불화한 관계가 됐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의로움에 분개해 동생을 죽였습니다. 이 일로 가인은 밭을 갈아도 땅으로부터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됐고 유리하는 자가 됐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하는 불화의 관계가 됐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연(피조물)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모두 화평이 깨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아는 모두를 두려워하는 공포의 상태, 유리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습니다. 자아와의 관계도 불화의 관계가 돼버린 것입니다.
평화의 관계가 깨진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세상과 돈을 사랑합니다. 재물(피조물)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갖은 불의, 비리, 탐욕을 경험합니다. 속이고 속아 사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살게 됐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화목제물이 돼 준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다 이루시어 불화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아와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과의 관계가 모두 회복됐습니다. 화평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 깨진 불화의 관계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화평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해 깨진 불화의 관계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화평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피조물(물질)을 다스리지 못해 깨진 불화의 관계는 물질을 다스림으로 화평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평안이 없는 자아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소망함으로 화평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을 화평하게 하려면 나 자신부터 화평해야 합니다. 즉 내가 먼저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화평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에게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며 피조물(물질)을 다스리고 소망을 가진 자로 살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화평한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하는 화평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심재호 목사(서울 고향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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