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편인가
찬송 : ‘너 시험을 당해’ 342장(통 39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6장 1∼4절
말씀 : 거룩한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시고 예배드릴 수 있는 특권을 주심에 감사합시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향해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면서 아주 성경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아신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게 없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어떤 표적을 구한 것일까요. 요한복음 6장 2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기적을 통해 떡을 얻어먹은 자들이 지속적으로 원하는 표적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도 이들과 같은 표적을 원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원했던 표적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대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분별할 수 있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두 그룹의 동기는 사뭇 다르지만 모두 잘못된 동기로 예수님께 표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잘못된 동기에서 실수를 범합니다. 뭔가 얻을 게 있어서 따르는 신앙이나 예수님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기적을 추구하는 것 둘 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바리새인도 아니지만 내 마음속 동기가 어떤 편에 속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엄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지갑에서 나오는 용돈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엄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지갑에서 용돈이 나오지 않는 순간 그 사랑은 식어버릴 것입니다. 엄마도 자녀도 모두 불행한 관계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지갑’을 노리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열정을 낸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표적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마음이 없는데도 계속 표적을 보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날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다면 바리새인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나의 고집과 욕심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 모습인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올바른 신앙의 동기를 갖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왜 믿는지 돌아보고 회복하는 가족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고 있었다면 용서해 주소서. 우리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불신을 앞세웠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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