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에서(갈라디아서 3장 10∼11절) 2017.12.26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 나서 ‘원점’에 서 본적이 있습니까. 원점에 돌아와 선다는 것은 그간의 노력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일을 완수하려고 애써보지만 남은 힘이 없습니다. 의욕도 안 생깁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자에 대한 원망이 일어납니다. 만일 책임자가 자신이라면 스스로 극도의 한심함을 느낍니다. 원점에 선다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특별히 율법과 믿음의 관계 가운데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난감한 경험을 합니다. 장로교회의 신앙교육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 나타내 보이시는 뜻에 복종하는 것”(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39문)이며 “그 규칙이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41문)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으로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으며 말과 생각과 행위로 날마다 그 계명을 범합니다”(82문). 우리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말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무인데 완수할 수는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 본문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한 자신을 깨닫게 합니다. 참된 신자라면 그 깨달음 이후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본분을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 그런 다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한 해를 지나고 보면 다시 원점입니다.
돌아보니 여전히 크고 작은 죄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매년, 매주, 매일 반복됩니다. 이윽고 “안 되는 건가”라고 한탄합니다. 말 그대로 원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실 원점에 서는 경험은 건강한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다른 사상과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원점으로 가서 서게 만듭니다. 계명을 완수할 수도 없고 계명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집니다. 행위와 믿음이 점점 조화를 이루어 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계명을 지킴으로 성화(聖化)를 이루는 것을 함께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믿음과 행위의 양극점을 무한히 오가는 원운동과 같습니다. 그 가운데 진보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회오리바람처럼 회전하며 상승하는 원운동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롬3:28, 30, 갈2:16) 그에 대한 감사로 계명을 지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무력함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은혜를 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시고 우리는 다시 일어섭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원점에 서는 기분을 느낍니다. 성도는 그 가운데 자랍니다.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원점으로 오고 가는 과정이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요즘 같은 연말이면 신실한 성도는 원점에 선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이 원점으로의 순환은 성장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분명 끝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성화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이 길 끝에 아버지의 품에 도달할 것입니다.
조재필 목사(부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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