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는 꽃은 없다(요한복음 11장 1∼46절) 2018.1.3
사람은 누구나 본인도 모르는 새 경험을 통해 형성된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틀과 고정관념들은 불완전하며 사실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무능력한 남자와 함께 산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는 얼굴보다 능력이란 편견을 갖게 됩니다. 이는 딸이 남편을 고를 때 조언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능력이 있으면서 바람피울 가능성이 높은 남자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순한 생각의 틀로 남자들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경험에서 비롯된 편견과 고정관념은 교회 내에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주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예수님은 시간을 지체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주님은 왜 사랑하는 이들의 간청에 즉각 응답하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실까요. 그 까닭은 본문 4절에서 나오듯 사람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명히 보여주고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밝히 알고 신뢰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전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병 고치는 능력이 대단해도 죽음의 권세만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 다음 예수님이 오자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고 말합니다.
이들은 곧 편견을 무너뜨리는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경험합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부패가 시작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한 참 하나님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지체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넘어뜨리는 게 아닙니다. 믿고 의지해서 반드시 임할 주의 영광을 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편견이 무너지고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개그맨 김국진씨가 예전에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꽃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겨울에 피는 동백과 매화가 봄철 개나리와 진달래가 온 산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것을 보고 “왜 나는 피지 않지. 나는 꽃이 아닌가. 죽은 것인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동백과 매화는 꽃이 아니거나 죽은 게 아니라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피지 않는 꽃은 없는 법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보다 먼저 주님의 살아계심과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우리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주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건가” 등의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지금 혹시 좌절하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아직 허락하신 주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와 살아계심을 보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결코 몰랐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주님을 진실로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을 다 알 수가 없고 잦은 고난에 지치더라도 우리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묶여 있음을 믿고 버티고 견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성공과 능력을 자랑하는 허울뿐인 ‘교회용 신자’보다, 일상에서 눈물 가운데 가슴 치며 살더라도 돈과 세속적 욕망을 따르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게 참된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정요엘 목사(파주 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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