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성결하게 하라(여호수아 3장 1∼17절)

구원의 계획 2018. 1. 20. 00:15

성결하게 하라(여호수아 3117) 2018.1.20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제자백가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내세우며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노자였습니다. 노자는 비어있음에 대한 말을 자주 했습니다. 세 가지 유명한 비유가 있는데 먼저 수레바퀴를 예로 들어 바퀴가 비어 있어야 살을 채울 수 있고 그래야 회전이 잘된다고 말했습니다.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비유도 했습니다.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담길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는 집에 대한 비유도 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 즉 방이 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모두 비어있음이 효용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비어있음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모습이 나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그토록 원하던 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거둘 시기로 강물이 넘칠 때였습니다. 요단강 북쪽 헬몬산의 만년설이 녹을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강 앞에서 사흘간 머뭅니다. 그때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은 지난 40년간 광야를 지나며 많은 고난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또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물이 범람하는 요단강이 그들 앞에 있습니다. 반복되는 고난에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수아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주목할 것은 성결입니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열쇠입니다. 성결은 히브리어로 카도시입니다.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태워버리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는 강을 건너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려움과 염려를 태워버리라, 없애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염려를 없애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염려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면 당장 상황이 달라지는지, 문제가 해결되는지 묻습니다. 당장 해결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염려가 사라집니다. 마음을 가득 채웠던 불순물이 태워 없어지면서 빈 공간이 생깁니다. 성령이 들어와 역사하실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결해져야 하나님의 창조능력이 우리 삶을 끌어갈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결의 또 다른 의미는 구별되다입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먼저 매개하고, 백성들이 따라가게 했습니다. 머물고 있던 자리를 떠나게 했습니다. 떠나려면 있던 자리를 정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머물며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그걸 버리고, 정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성결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나쁜 말을 뱉었습니까. 스스로를 저주하고 공동체에 대한 불평을 습관처럼 말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자리를 정리하고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결하게 되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길이 강에 들어가자 물이 말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리 없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요단강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성결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문제였습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좇았던 건 아닌지 돌아봅시다. 우리가 영적 육적 성결을 지키고 산다면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염려가 되게 두지 않으십니다.

 

성결하십시오. 마음에 공간을 두어 성령이 임하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정지훈 목사(양산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