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은 사람(누가복음 10:25∼37, 요한복음 13:34) 2018.2.14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갑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는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됐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는 주저 없이 답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주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사는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며 계속 질문합니다. 이에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답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인적도 드물고 가파르고 험한 편입니다. 강도 역시 빈번히 출몰합니다. 불행히 여기를 지나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마침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곳을 지나가는데 못 본 척 그냥 가버립니다.
이들은 당시 존경받는 최고의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을 탄다’는 신학적 변론이나 율법적 논쟁거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세 번째 지나가는 사마리아인에 주목합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봅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엔 넘어선 안 되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율법의 선, 감정의 경계선 말입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저급한 인간으로 취급하며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강도 만나 죽게 된 자를 위해 값비싼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봐줍니다. 또 밤새도록 그를 간병합니다. 다음 날 주인에게 계속 간병해 달라고 부탁하며 혹 비용이 더 들면 값을 치르겠다고 합니다. 두 부류의 관점 차이가 극명하게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번엔 아무도 상종하지 않던 대상, 세리장 삭개오를 살펴봅시다. 삭개오는 세금을 과하게 거둬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로 사욕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가 외면한 그를 주목했고 찾아와 만나줍니다. 또 그의 집에서 묵으시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경계를 넘은 겁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며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또한 경계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원수의 수도였습니다. 요나는 이 경계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 배경이 유대이므로 강도를 만난 자는 유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마리아인 입장에서 그는 원수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그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는 달랐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 공동체 울타리 밖에 있었지만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예수의 마음을 지닌 자 아닐까요.
우리 인생에도 경계는 늘 있습니다. 국가·민족·지역·종교·계층의 경계 등 말입니다. ‘우리’의 울타리는 긍정적으로 보면 대단한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엔 배타성이란 부정적 영향도 있습니다. 본문은 경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에 따른 결과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제 사순절을 맞았습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이라는 경계를 넘어 구원을 이뤘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신앙인에게도 경계는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경계가 있는가 하면 깨고 넘어서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를 분별할 힘은 무엇일까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거룩한 명령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형성한 경계는 지켜야 할 경계입니까. 아니면 넘어야 할 경계입니까.
조종환 목사(오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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