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샘물,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4장 11∼14절) 2018.2.21
큰 아픔을 치유 받고 새 인생을 살게 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마리아 수가성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중동의 정오는 활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습니다. 여인들은 서늘한 아침과 저녁시간에 물을 길으러 우물가에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수가성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 햇살이 가장 따가운 정오에 혼자 우물물을 길렀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다섯 번의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는 결혼도 않고 오가다 만난 사람과 살고 있었습니다. 씻고 또 씻어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상처와 수치심에 그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홀로 살고 싶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스테판 파티슨 교수의 ‘수치심’이란 책이 있습니다. 파티슨 교수는 ‘수치심은 자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부분에 수치심을 느끼고 거기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네이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은 수치심을 가지면 4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 번째가 위축입니다. 사람들은 수치심 앞에 위축됩니다. 숨어 버립니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가 회피입니다. 수치심 앞에 시선을 외면하고 회피합니다. 그러나 이 회피는 괴로움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심해지면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연결됩니다. 자기 감정을 노출하지 않기에 상대방이 도와주기도 어렵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 공격입니다. 자신을 학대합니다. 자책합니다. ‘나는 못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모욕합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멀리 합니다. 심하면 자학 거식증 자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따돌림 협박 욕 깔봄 경멸 조롱 풍자 비웃음 오만함 비난 조롱 냉소 얕봄 독설 퉁명스러움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투영합니다. 타인을 학대하고 집중 공격합니다. 수치심의 책임을 전가하고 경멸하고 업신여깁니다.
수가성 여인은 자기의 수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엔 여전히 수치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는가. 내 인생 참 불쌍하고 처량하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혼자 물을 길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수가성 여인은 영생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수치심이 씻겨 내려가는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과거엔 전혀 경험치 못했던 기쁨을 맛봅니다. 갈급함에 허덕이던 영혼 속에 한없이 샘솟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 순간 자신이 이고 온 물 항아리를 던져버리고 수치심을 주었던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 외칩니다. “내가 오늘 메시아를 만났다.”
이제 그녀에게는 영생의 샘물이신 예수님의 은혜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마음 한구석엔 ‘새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리라’는 희망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떼를 지어 예수님께 나와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됩니다.
인생의 수치심과 상처로 절망 가운데 빠진 분이 계십니까. 채워지지 않는 타는 목마름으로 살아가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패배의식과 비교의식, 절망과 열등감, 인생의 각종 수치심 앞에 놓인 분들이 계십니까.
영생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의 은혜가 당신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 안에 생명 회복이 있습니다. 참사랑과 치유가 있습니다. 오늘 수가성 여인이 만났던 예수님을 만남으로 생명수 은혜가 흘러넘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재풍 목사(서울 신림제일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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