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검사입니까 변호사입니까(욥기 11장 1∼20절)

구원의 계획 2018. 2. 27. 00:37

검사입니까 변호사입니까(욥기 11120) 2018.2.27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1)였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는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온몸에 악성 종기마저 퍼져 질그릇 조각으로 자신의 몸을 긁는 신세가 됩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퍼붓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보다도 욥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욥에게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찾아옵니다. 처음에 친구들은 마음을 다해 욥이 당한 슬픔을 위로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내 욥이 받는 고난의 원인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들은 욥이나 그의 가족들이 지은 죄의 결과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내립니다. 그러니 죄에서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욥은 억울합니다. 친구들의 설명도, 하나님의 처사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욥은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소발은 다른 친구들처럼 욥이 당하는 고난은 그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11:6)고 말합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너는, 하나님이 네게 내리시는 벌이 네 죄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마음을 새롭게 하고, 순순히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욥을 회복하실 거라며 설득합니다. 언뜻 보기에 옳게 보이는 소발의 조언은 사실 위로를 가장한 송곳 같은 말이었습니다.

 

소발의 모습을 보면서 법정의 한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하나님은 판사석에 앉아계십니다. 욥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소발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는 변호인입니까 아니면 검사입니까. 소발은 본문에서 마치 욥의 유죄를 증명하려는 검사처럼 신문하고 있습니다. 죄를 자백하라고 다그칩니다. 친구들의 기소 내용대로라면 모든 증거가 욥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욥은 결백을 주장합니다. 고통을 나누려 찾아온 친구들이 이제는 욥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이 혹시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고통당하는 이들 앞에서 원인을 찾고 문제점을 짚어서 그 마음을 더 힘들게 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말을 가장하여 상대방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통당하고 마음 상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감싸주는 일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기분을 이해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지만 진정한 공감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조언은 겉만 봤을 때는 하나같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맞는 말이 항상 바른말은 아닙니다. 바른말은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북돋아주고 감싸주며 세워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순간에 맞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공감은 당신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를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을까요. 바로 우리와 공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는 사형수를 위해 변론하는 국선변호인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우리를 변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위 가족이나 이웃에게 변호인입니까, 아니면 검사입니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의 입술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언어로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허다한 허물 가운데서도 우리를 용납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기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남병 목사(하남 선한이웃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