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큐티

빌라도의 선택(요한복음 19:1-16) 2020.4.7

구원의 계획 2020. 4. 7. 00:14

빌라도의 선택(요한복음 19:1-16)

 

찬송가 343장 시험 받을 때에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 도움말

 

※ 도움질문

Q1 예수님에 대한 빌라도의 조치와 의도는 무엇인가(1-7)?

Q2 죄 없음을 알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에 내어준 이유는 무엇인가(8-16)?

 

※ 말씀묵상

 

재판이 계속 될수록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확신했다. 그러나 거세지는 무리들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한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게 된다.

 

빌라도의 고백 (1-7)

예수님이 무죄하시다는 것을 안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 한 뒤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형벌을 다 받은 상태, 아무 힘이 없는 사람임을 인지시켜 예수님을 풀어 주려했다(5). 대중도 만족시키고, 자신의 양심에도 거리낌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빌라도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중과 종교지도자들은 더욱 크게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한다(6).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옹호하며 유대인들에게 직접 십자가처형을 하라고 답변한다(6). 예수님을 바라보면 옳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곧 그 옳음은 반대에 부딛친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 없다. 옳음을 따르던지, 반대의 힘에 굴복되던지 둘 중 하나만이 나의 선택이 된다.

 

어쩔 수 없지 (8-16)

계속해서 예수님을 놓아 주려는 빌라도의 모습에(12),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공략한다.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빌라도의 의도를 꺾어버린다(12). 이제 빌라도는 저들의 요구를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벌에 내어주게 된다(16). 자신의 지위를 위해, 안정을 위해, ‘옳음’을 알았음에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이 수시로 찾아온다. 이때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나를 타협시키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빌라도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음을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진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 삶의적용

옳지 않음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세상의 요구에 쉽게 넘어지는 나의 모습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