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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 하나님의 이름으로 분출된 주류를 향한 욕망

구원의 계획 2011. 8. 19. 21:03

자마, 하나님의 이름으로 분출된 주류를 향한 욕망
[취재후기] '미국은 우리 것'에 관한 불편한 진실
2011년 08월 05일 (금) 17:24:14 [조회수 : 2617] 윤영석 ( 메일보내기 )( honest2jesus

필라델피아는 3년 전 그대로였다. 거리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 냄새와 온몸을 끈적이게 하는 습도도 여전했고,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 & All Nations, 이하 자마, 대표 김춘근 장로)라는 집회도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필라델피아에 온 이유다. 처음 자마에 왔을 땐 전도사로 학생들과 함께 참여해야  했고, 3년이 지난 후 기자로서 자마를 참관해야 했다. 모두 눈 감고 기도를 올릴 때 혼자 눈을 뜨고 그 모습을 담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눈을 부릅뜨고 참관한 2011 자마는 눈 감고 참가했던 2008 자마와 주제나 내용 면에서 많이 비슷했다. 무엇보다 김춘근 장로의 '미국이 우리(기독교인의)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반면,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나의 생각도 변함없었다.

   
 
  ▲ 김춘근 장로. (출처: 자마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과 한 사회의 시민이라는 정체성 간의 타당한 연결 고리 없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자녀 된 우리 또한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논리가 과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신학적·사회적 고찰 없이 미국이 기독교인의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게 '미국이 비기독교인의 것'이라는 주장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미국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원한다면, 자칫 기독교 제국주의로 들릴지 모를 '미국은 우리 것'이라는 구호보다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낮은 자세로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은 우리 곁'에 도래했음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얼마나 많은 백인들이 비슷한 명목으로 (대서양을 홍해로, 미대륙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원주민을 가나안 부족으로)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시켰는지 기억해야 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은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세상 '안'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고 그리 당부하셨거늘, 한술 더 떠 세상이 우리에게 '속'했다고 속삭이는 건 아닌지. 혹자는 주인의식 없는 나를 비판할지 모르나, 주인의식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누가 주인인지 제대로 의식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닐까. 하나님 것은 하나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김춘근 장로가 이렇게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바로 2세의 주류 사회 진출이다. 김 장로가 'Korean American'이라는 말 대신 'American with Korean heritage'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주류가 아닌 주류가 되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류 사회에 나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라'다. 좋은 말이다. 문제는 자마가 여전히 백인 중심인 미국의 사회적 현실을 무시하고 '엘리트주의'만을 강조하는 데 있다.

자마는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용서, 화해가 얽힌 신학적 시각을 제시할 수는 없었나. 오늘날 한인 2세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도 '대나무 천정'(bamboo ceiling: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장벽을 일컫는 말)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미국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의 고용정책센터(CWLP)는  최근 미국 기업에 아시아계 미국인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인 '대나무 천장'이 존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16%가 아시아계지만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경영자 위치에 오른 아시아계 미국인은 단지 1.5%라는 수치를 근거로 들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2세들에게 몇몇 예외적인 성공의 신화의 답습을 요구하는 대신, 신학적이고 현실적인 대안과 위로를 줄 순 없었을까.

또 복음은 엘리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기쁜 소식이 아닌가. 잘난 사람이 잘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두에게 잘난 사람처럼 되라는 것은 일종의 억압이다. 못난 나에게 잘난 너가 되라는 말은 잔인하다. 자마는 못난 나와 잘난 너의 공생공락(共生共樂)을 강조할 수는 없었을까. 자마의 영적 대각성 운동이 엘리트만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되지 않길 빈다.

   
 
  ▲ 2011 자마 집회에서 설교한 짐 심발라 목사. ⓒ 미주뉴스앤조이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하나님은 일하신다. 김춘근 장로의 요지와 달리 2011 자마의 강사인 브루클린타버너클교회의 짐 심발라 목사와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의 게리 하우겐 대표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바라보게 했다. 오병이어의 본문으로 설교한 짐 심발라 목사는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든 헐벗은 이에게 주라'고 설교했다.

하우겐 대표는 인신매매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바라보게 했다. 미국이 누구의 것이든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사람들과 연대하라는 그들의 메시지는 자마가 경청해야 할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나님께서 위에서 아래로 오신 걸 신앙한다면 더 낮은 곳으로 가려는 영적 대각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3일 간의 취재를 마치고 나온 필라델피아는 여전히 습하고 더웠다. 쾌적한 집회 현장과는 달랐다. 아래로 향한다는 건 때로 빵빵한 에어컨을 물리치고, 냄새나고 불편하고 위험한 이웃들의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묻는다. 과연 예수께서 로마가 우리의 것이라 가르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