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냐, 가방이냐(사도행전 11장 19~26절)
쌀 것이냐, 넣을 것이냐. 자타공인 보자기 예찬론자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보자기로 싸는 문화와 가방에 넣는 문화, 즉 보자기형 가변 조직과 가방형 관료 조직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방과 달리 보자기는 어떤 형태로 어떤 내용물을 쌀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예상 불가능한 것, 불확실한 것을 모두 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보자기이다.”
이처럼 가방과 달리 보자기는 어떤 형태이든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며 보자기에는 보편적인 인류 문화의 숨결이 숨어 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싸는 보자기형입니까, 넣는 가방형입니까.
제가 30대에 지금은 고인인 옥한흠 목사님께서 진행하는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참석 조건이 50세 이하였습니다. 사람이 나이 50이 넘으면 자기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당시에는 ‘좀 유난스럽다’는 생각과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동안 해오던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변화는 싫고 불편한 것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는 경직된 사고가 아니라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생각과 사고가 정말 중요하게 됩니다.
유연성과 신축성으로 말하면 고무줄만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점점 굳어져 가선 안 됩니다. 유연하고 신축성을 가진 고무줄과 같이 계속 늘여가야 합니다. 계속 늘이다 보면 우리는 ‘007가방’이 아니라 ‘보자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노인도 청소년과 어린이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고 아이와 청년들 또한 어른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대 구분이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분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어른의 한 인격이나 코흘리개 아이의 한 인격이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요, 복음입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세대, 모든 문화, 모든 민족과 나라와 열방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안디옥 교회를 개척했던 당시 무명의 전도인들은 복음을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감히 전합니다. 기독교회의 신기원을 이루는 그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정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경악스러움으로 완전히 놀라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의 등장은 분명한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기 시작한 곳이 바로 안디옥입니다. 또 안디옥 교회가 위대한 사도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므로 인류 역사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 왔습니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사는 성도 여러분,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낡은 가죽 부대가 아니라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새로운 가죽 부대가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손, 곧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에 늘 민감하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착한 성품의 소유자로, 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되시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안맹환 부산 땅끝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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