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운명은 목사에 달려 있다.
글/윤대영 목사
목회자들은 믿음이 깊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믿고 성역을 추진한다. 그런데 믿기는 믿었는데 하나님은 그 목회자의 믿음대로 이루어주시기 않을 때가 많다. 이로 인하여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추락하고, 교회 위상이 떨어지며, 사회에서 신용 없는 사람으로 믿지 못할 교회가 되는 예가 있다. 분명히 목회자는 많다. 목회자는 믿고 무엇이든지 추진한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믿지 않고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용기와 만용의 차이는 무엇일까? 용기는 바르고 옳은 진리이기에 그 진리를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용기이다. 만용이란 나의 원하는 대로 나의 욕심대로 하려고 하는 자기 결심을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멀리하고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사역을 하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믿음은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임하면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신은 나의 뜻 나의 욕망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 다음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거나 밀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은행에 중요한 업무를 보시는 장로님을 만났다. 차를 드시면서 한숨을 쉬신다. S은행은 사실 그 장로님이 행장으로 있으시면서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대출을 받은 다음 교회가 상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은행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이제는 목회자의 대출신청을 조심스럽게 취급하라는 결의를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대출을 하는 것이 성서적이냐! 비성서적이냐는 고민도 많다. 그러나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또한 교회가 목회하기가 너무나 불편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성전건축을 계획하고 실천해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80년대와 2000년대 20년 사이에 성도들의 생각과 실천이 많이 바뀌어졌다. 당회를 한다. 목사님이 성전건축 안을 내어 놓는다. 어느 누구도 반대 하지 않는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목사님 일하시는데 우리가 방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당회가 만장일치로 결의하게 된다. 그리고 제직회 역시 마찬가지의 발언을 하고 일사천리로 결의를 한다.
건축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실제 교회건축을 시작하기 위해서 건축헌금을 작정하거나 건축헌금을 시도한다. 여기서부터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결의는 시원시원하게 하고 헌금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교회건축에 소용되는 비용은 눈에 보인다. 100억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정내지는 헌금약속은 십분의 일도 안 된다.
결의한 사항의 실제 책임은 목회자에게 돌아온다. 목회자가 능력이 있는가! 99%는 재능 없고 무능하기 그지없다. 어느 목회자가 이런 경우를 당하자 다시 당회를 소집하고 “장로님들이 건축을 하자고 결의하고, 헌금을 드리지 아니하니 교회건축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을 하자 당회원들의 답변은 “목사님의 하신다고 해서 우리는 반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목회자의 밤은 하얗게 지새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도의 제목도 바뀌었다. 성도를 위해서 늘 중보 하던 기도가 이제는 하나님 교회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정을 넉넉하게 달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전건축 작정하고 결의한 후부터 교인들은 늘어나는데 헌금액수도 줄기 시작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생각한 것이 우선 교회건축을 하고 재정을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은행의 대출을 받고 교회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상환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직 하나의 길로 보였다. 그리고 목회는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성전을 크게 건축하고 교회가 성장하여 성전건축을 마무리한 한 목회자도 많다. 그러나 이러 한 계획이 차질이 나는 교회도 한두 곳이 아니다. 80년대만 하더라고 교회 대출이 생소했으나 90년 후반부터 교회대출 상품이 은행에서 생겨났다.
그 이름도 성서적인 미션대출이다. 은행이 선교를 한다. 대출을 해 주는 것이 선교이다. 생각하니 좋은 상품이름이다. 그런데 미션은 가면 갈수록 미션 되지 못하고 은행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을 강제 경매하는 행위를 시작한지가 10년이 넘어섰다. 지금까지는 중소기업보다 교회의 신용이 좋다고 판단했다. 교회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나오는 순수총액 즉 수입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예산을 교회건축 공장시설자금으로 환원하여 대출해 주기 시작했다. IMF 때 많은 경매 건수가 생겨났다. 그 이후부터 이제는 일반사회 사업과 교회사업의 성전경매물건이 호수처럼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교회성전 경매는 일반인들이 꺼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종교적 이유도 있다. 그러나 더욱 경매를 하는 이유가 목사님의 보상요구가 크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경매도 쉽지 않다는 결론이 은행에서 판단되었고 더욱 성전건축 대출은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자기 것을 챙기는 것일까? 어느 교회가 어려운 교회를 살려보겠다고 헌신하는 모습에 목회자 자신은 감사하고 협력하여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가 소생하기 위해서 철저히 교회를 놓아야 하지 않을까? 누가 목회를 하든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의 종이므로 하나님의 통제한다.
자신이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목회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 도우시지 아니한다는 가설이 성립되는 것이다.이제 하나님의 자신의 것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서 교회가 경매에 넘어가는 어려움이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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