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자료/메아리

교인의 얼굴은 목사 얼굴의 반사경 ③

구원의 계획 2010. 8. 5. 09:14

교인의 얼굴은 목사 얼굴의 반사경

 

1. 교인에게 좋은 반응을 원하면

   1)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

   2)내가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사랑한다

   3)내가 상대를 칭찬하면 상대도 나를 칭찬한다.

   4)내가 상대를 섬기면 상대도 나를 섬긴다

   5)내가 욕심을 버리면 상대는 나를 존경한다.

   6)내가 상대를 존경하면 상대는 나를 하나님의 전권대사로 섬긴다.

   7)내가 상대를 관용하면 상대도 나를 관용한다.

   8)내가 부드러우면 상대도 부드러워진다.

   9)내가 상대의 신발을 돌려주면 상대도 돌려준다.

   10)내가 상대에게 주면 상대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준다,

 

2. 교인의 나쁜 반응의 원인은?'

   1)내가 변하지 않으면 상대도 불변한다.

   2)내가 고집을 부리면 상대도 고집을 부린다.

   3)내가 상대를 미워하면 상대도 나를 미워한다.

   4)내가 상대를 밟으면 상대는 나를 부서 버리려 한다.

   5)내가 상대를 험담하면 상대는 나를 중상 묘략한다.

   6)내가 상대를 멀리하면 상대도 나를 멀리한다.

   7)내가 군림하면 상대는 나를 증오한다.

   8)내가 겸손하면 산대도 겸손하여진다.

   9)내가 혈기내면 상대도 혈기낸다.

   10)내가 상대가 없어젔으면 색각만해도 상대는 센스하고 몇배 나를 쫓아낼 궁리한다.

   11)내가 근위대를 만들면 상댄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쿠대타를 준비한다.

 

3. 교인의 모습은 내 얼굴의 반사경

   1)그 교회 교인들의 모습은 곧 그 교회 목사 얼굴의 반사경

   2)그 교회 교인들이 평안하고 즐겁게 교회를 섬기면 그것이 곧 목사 목회의 반사경.

   3)그 교회 교인들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교회 다니면 그 얼글이 목사 얼굴의 반사경.

   4)그 교회 교인들이 검방지고 무례하면 그 모습이 목사 목사모습의 반사경.

   5)그 교회 교인들이 양 같이 양순하면 그 얼굴이 목사 얼굴의 반사경이다.

 

4. 예수님의 섬김의 설교와 제자의 도.

   1))마20:26-28.너희중에 큰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되고 으뜸이 되고자하는 자는 너희 종 이되어라.

   2)눅20;23.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중에 있노라.

   3)고전 10:31-33.먹든지 마시든지 다-교회에 거치는자가 되지 말라.-나와같이 모든사람을 기쁘게하여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라.

   4)요12:24.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저-밀일이 썩지않으니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5. 바울사도가 스스로 종이되는 이유

바울은 서신마다 서두에는 빠짐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종,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쎴다.*

고전 9:19. 내가 모든사람의 “종” “종” “종”이 된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많은 사람을 얻고자하는 그것이 종이되는 바울의 “목적” “목적” “목적” 삶의 목적이었다.

루터는 말했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머슴이 되었노라r 하였습니다.

종은 자기가 없다.

종이되지 않으면 목회를 성공 할수없다.

상전이면서 성공하는 목사는 비범한 초 능력을 가진 카리스마 목사이다. 카리스마 은사가 없는 목사가 그 흉내내면 100전 100폐한다

자기가 있다면 종은 아니다.

그래도 그 종은 실존한다.

그 실존은 종으로서 실존하는 예수 상전을 모신 자기 실존이다. 그 실존이 참된 목사의 실존이다

 

후배 목사님 여러분!

이것은 목회에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목회 하시는데 선배의 경험을 하나의 참고로 하시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목사가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날마다 죽으면서 이상의 모습을 끝까지 비춰주면 상식수준 이상의 성도들은 목사를 닮아오고 절대 다수의 성도들은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목사를 존경하며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다 수 에는 성도의 절대 다수와 장로의 절대 다수를 비례하여야 합니다. 교인1000명에 장로 5명이면 한명의 장로가 200명의 대표성을 갖고습니다. 한 장로가 반대하면 200명이 반대하고 두 장로가 반대하면 400명이 반대하고 3명이 반대하면 그 교회서 목회하기 어렵습니다. 고로 우리 장로교회는 문자 그대로 장로 교회입니다. 당회 인간관계가 무너지면 절대다수의 교인의 지지는 무너집니다. 교회가 분열되는것은 당회 인간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젊은 후배 목사 여러분!

목회에 있어서 당회원과의 인간관계를 일보다 최우선하야야 함을 명심하십시요. 가지 붙들고 춤추는 자는 아마추어의 행태입니다. 상식이하 예외인은 도토리가 됩니다. 극소수의 도토리는 도토리로 모시고 가면 됩니다. 어느 공동체나 가롯유다 도토리가 있는 것이 정상 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 사회입니다. 많은 양들 무리속에 염소 몇 마리 섞여 풀을 뜯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그것은 큰 문제 되지 않습니다.

 

목사들에겐 골치아픈 존재 이지만 하나님이 목사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하여 세워놓은 하나님의 일꾼들이요 배보 입니다. 야당이 없는 공동 집단은 북한 김정일 당 뿐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야당이 있어야하고 야당과 조화를 잘 일우어 가는것이 민주의 원칙입니다. 교회는 민주주의 공동체입니다. 목회를 잘하는 목사는 그것을 잘하는 목사입니다.

우리 교단에 신흥 교회인 N. 목사는 동문회에와서 강의를 하는데 이런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장로는 발로 차버리고 싶은 마음이 날때가있다고 하였는데 사회하던 증경총회장이 그말들으니 속이 시원하고 내 마음하고 똑같다고하였습니다. 목회는 그런것인데 그 분들은 그러면서 잘 리더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상식 이하의 예외의 뿔난 사람들은 가롯유다의 심성과 같이 변치않고 못된 짓만 계속 합니다. 그런분이 많지 않습니다. 혹 있을 뿐입니다.그렇다고 목사의 본질은 상실하고 이성을 잃고 상식 이하에 목사가되어 그를 대항하면 똑 같은 가롯유다가 됩니다. 예수님도 상식 이하의 가롯유다를 고치지 못하시고 잘라내지 않으시고 대항하지 않으시고 탄식하시며 그대로 끝까지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목회 철학이요, 공동체를 리더해가는 방법이 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보다 위대합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장로를 고치려고 합니까? 예수님 보다 더 위대 합니까?. !!?. 어리석은 오버한 사고 입니다.우리 목사중에도 상식 이하의 목사들도 있습니다. 상식 이하의 목시들은 가롯유다를 고치겠다고 가롯유다가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큰 착각 입니다. 그 결과는 아프리카 초원에 누우가 물을먹으로 습지 진흙탕에 들어갔다가 점점 빠저들어 가는 모습의 형국이 됩니다.

 

교인들의 얼굴은 내 얼굴의 반사경!. 교인들의 얼굴은 내 얼굴의 반사경!. 이것은 진리입니다. 교인을 원망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곧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면 지혜로운 것입니다. 돈 내고 예수믿는 애꿎은 교인들을 돈 받고 예수믿는 목사가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바꾸어 생각하여 보세요. 욕심을 버리세요, 허영을 버리세요, 과시욕을 버리세요, 오늘날 과시욕이 목사의 주가를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본질이 아니면 전부를 설득해서 안되면 전부를 양보하십시오. 비 본질은 양보하여도 교회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비 본질가지고 고집부리는 목사는 항상 시끄럽습니다. 비 본질가자고 싸우는 목사는 잘못된 목회입니다.

 

교회를 새로운 아파트지역에 옮기는 문제로 교인 반반이 갈라저 갈등하다가 결국 목사가 밀어부치니 옮기기로 결의는 되었습니다. 교회를 이전 건축하자 오레도록 그 교회를 섬기든 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안고 1/3이 떠났습니다. 그곳에가서 많은사람을 모은다고 과연그것이 옳은 결단 입니까? 그곳에는 그 교회 아니라도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비 본질을 가지고 교인1/3이 떠나게 하는것은 필자는 잘못된 목사의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1/3의 교인을 떠나게 하면서 옮기는 것은 목사의 이상 실현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결단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대 교회 아니면 어떠습니까? 조그마한 교화가 많으면 더 좋지 않습니까? 비 본질 가지고 많은 교인들에게 상처와 실망을 주는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절대 다수가 찬성하고 극 소수가 반대 하는데 옮기는 것은 정상이지요.

 

비 본질은 상대의 주장에 양보하면 조금 속도가 느릴 뿐입니다. 빨리 가려다 전복되는 것 보다 제한 속도가 훨신 유익 합니다. 교회짓고 떠나는것은 대체로 비 본질을 갖고 고집 부리고 갈등하던 결과 입니다. 교회를 조금적게 지으면 어떻고 구조가 내 뜻대로 안되면 어떠합니까? 목사들의 갈등과 시험드는 것을 보면 99.9999%가 전부 비 본질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를 ㄱ. 자로지으면 어떻습니까? 리모델링을 아니하면 어떻습니까? 장로가 목사우에 군림하면 어떻습니까? 교회차를 안사면 어떻습니까? 사례문제, 의견차이 이 전부는 비 본질 입니다. 비 본질을 갖고 싸우면 본질을 훼손하는 비 정상 목회가 됩니다.

 

필자가 목회를 끝내고 되 돌아보니 더 분명하게 그렇습니다. 필자도 한때는 비 본질 가지고 속상해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후배목사 여러분! 고급 차타고 과시하는 목사가 되려하지 말고 가짜박사 사다놓고 허영심 내세우는 목사가 되지말고 교회를 평안이 이끌고 순리로 부흥 성장시키며 존경받는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발전 시키는 후배 목사님들이 되시길 두손 모아 기도 하겠습니다. 교인의 얼굴은 목사 얼굴의 반사경.!!!!!!!!!!!!!!!!!!!!!!!!!!!!!!!!!!!!!!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 글쓴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무궁교회 장 달 윤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