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6329

베드로의 부인 2020.4.10

베드로의 부인 찬송 : ‘갈보리 산 위에’ 150장(통 13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6장 69~75절 말씀 : 예수께서 붙잡힌 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한 사건입니다. 다른 제자는 몰라도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과 추억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 많은 물고기를 잡았고 물 위를 걷기도 하고 변화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훌륭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힐 땐 칼을 빼 들고 예수님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예고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리고 떠나도 자신만은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의 장례(요한복음 19:31-42) 2020.4.10

예수님의 장례(요한복음 19:31-42) 찬송가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굳게 서기 2020.4.10

굳게 서기 [마가복음 15:33 - 15:41] - 찬송가 150 장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고린도전서 15:58] 아드리안과 그의 가족은 그들의 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같은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그는 예전에 테러범들이 교회를 훈련장으로 쓰던 시절에 생긴 총탄 자국이 선명한 교회 마당에 서서, “성 금요일인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기억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그는 그곳의 성도들은 고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드리안의 가족은 이렇게 말하며 그곳에 계속 머무르기로 선택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굳게 서있을 것입니다.” 그곳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

당신이 직접 써야 합니다 2020.4.10

2020년 4월 10일(금) 당신이 직접 써야 합니다 You've got to “write…” “너희는 너희의 마음에 쓰여진 우리의 추천서(신임장)이며,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인지되고, 인정되고) 읽혀진다. 너희는 우리가 전한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는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마음판에 쓴 것이다.” (고후3:2-3, AMPC) 일부 성경 번역가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이 “우리 마음에 당신에 대한 생각을 품고 다닙니다.”라는 의미로 썼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2절)은 이와 상반됩니다. “너희는 우리가 전한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이 구절은 어떤 의미이며..

십자가 고난의 수혜자(이사야 53장 4~6절) 2020.4.9

십자가 고난의 수혜자(이사야 53장 4~6절)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혜택을 받아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묵상해보면 감사와 감격이 넘칩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덕 보고 혜택 받은 게 없다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지 의문만 쌓여간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 믿고 혜택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본문은 이에 대한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죄가 근본적으로 씻겨 나가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를 일곱 번이나 사용하면서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 때문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

예수님의 섬김 2020.4.9

예수님의 섬김 찬송 : ‘성자의 귀한 몸’ 216장(통 35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4장 22~26절 말씀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오늘 본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겪기 전 목요일에 제자들과 만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생으로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한 것은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본을 보이신 것이라고 하십니다.(요 13:12~15) 예수님은 왜 이런 본을 보이셨을까요. 제자들의 마음과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임을 당할 것을 들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25-30) 2020.4.9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25-30)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그 길에 머물러 있으라 2020.4.9

그 길에 머물러 있으라 [요한복음 14:1 - 14:7] - 찬송가 435장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14:5] 내가 리 바오를 따라 중국 중부지방 산맥을 깎아 만든 계단식 성벽 정상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 땅거미가 지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인데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왼편으로 경사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가파랐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리 바오 옆에 바짝 붙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를 믿었습니다. 당시 나의 상황은 매번 확신이 필요했던 제자 도마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거처를 예비하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2020.4.9

2020년 4울 9일(목)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We’re christ’s epistles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고후3:2) 오늘의 본문 구절을 확대번역본(AMP)으로 공부해 보면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마음에 쓰여진 우리의 추천서(신임장)이며,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인지되고, 인정되고) 읽혀진다.” 밑줄 친 부분을 주의해보십시오. 새국제성경(NⅣ)이나 킹제임스(KJV)에서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확대번역본은 “너희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 번역가들이 작업할 때 항상 모든 사항에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원칙이나 문맥, 메시지, 혹은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마태복음 4장 23~25절) 2020.4.8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마태복음 4장 23~25절) ‘팔복의 산’은 상징적으로 ‘모세의 산’과 비교되는 산이다. 모세는 12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그 계명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였다. 하지만 인간이 이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이 계명은 오랫동안 우리를 족쇄에 묶고, 절망과 좌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모세의 산이다. 반면에 팔복의 산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새 계명을 선포한 산이다. 그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 산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옭아매었던 율법의 족쇄에서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고 풀려났음을 선언하셨다. 예전의 모세의 산은 백성들이 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산을 밟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했기 때..